[르포] 철구조물 헤치며 겨우 닿았는데…끝내 숨지자 망연자실
의식 또렷했던 40대, 구조 앞두고 사망…매몰자 가족들 통곡·탄식
소방대원들, 위험 무릅쓰고 혼신의 구조 작업…"손으로 헤쳐가며 수색"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현장에서는 사고가 난 6일 오후부터 꼬박 24시간이 넘도록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인명 구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소방대원들이 사고 위험을 불사한 채 빽빽하게 얽히고설킨 철 구조물을 헤치며 수색을 벌이고 있지만, 속속 발견되는 매몰자들이 끝내 사망했거나 숨진 것으로 추정되면서 현장 안팎에서는 가슴 먹먹한 안타까움만 늘어가고 있다.
무너져 내린 높이 60m가량의 타워는 처참한 형상이다.
반듯했던 육면체의 대형 철재 구조물은 흡사 바닥에 떨어뜨린 케이크처럼 본래 형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찌그러져 버렸다.
철재 빔과 철근, 유리섬유 등 각종 자재가 압착된 채로 얽혀 있는데, 소방대원들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인명 수색과 구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6일 오후 2시 2분께 보일러 타워가 무너진 이후 사고 현장에는 총 7명이 매몰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중 2명은 약 1시간 20분 만에 각각 팔과 다리가 구조물에 낀 채로 발견됐다.
특히 팔이 낀 상태인 김모(44)씨는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의식이 또렷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스스로 호흡 곤란을 호소했고, 구조대는 사람의 접근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김씨에게 진통제를 제공하기도 했다.
구조물 제거가 여의치 않자 바닥의 흙과 자갈을 파내며 조금씩 다가가는 등 성과도 있었다. 이에 소방 당국도 야간 브리핑에서 "곧 구조가 가능할 듯하다"는 기대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후로도 구조는 쉽지 않았다.
구조대는 2차 붕괴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유압 절단기 등 장비를 활용해 장애물을 제거하며 조금씩 김씨와 가까워졌지만,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새벽이 되면서 기온도 낮아졌다.
구조가 마무리 단계이던 7일 오전 4시께 김씨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췄다.
구조대는 미처 팔이 다 빠지지 않은 김씨를 상대로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김씨는 끝내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현장에서 의료지원을 하던 의사는 53분 뒤에 사망 판정을 내렸다.
구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안간힘을 쓴 구조대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결과지만, 나머지 매몰자들을 위해 수색을 늦출 수는 없었다.
소방 당국은 구조견, 드론, 음향탐지기, 내시경 카메라, 열화상 카메라 등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인명 검색에 주력했다.
다만 가장 유용하고 핵심적인 검색 수단은 구조대원 현장 진입을 통한 직접 수색이고, 그 때문에 대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2차 사고 가능성도 상존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구조대원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자 스스로 안전을 돌볼 겨를 없이 현장을 누비고 있다.
사고 현장에는 매몰자의 가족들이 찾아 구조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모습이 목격돼 먹먹함을 더하고 있다.
사고 당일부터 현장을 찾은 가족들은 현장 옆에 임시로 마련된 컨테이너나 발전소 본관에서 대기하며 매몰자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염원했다.
그 과정에서 한 매몰자의 가족은 전신이 쇠약해지는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발견된 매몰자가 숨지거나 위중하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통곡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매몰자 중에 아직 생환자가 없어 현장 주변 분위기는 더욱 엄숙하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7일 오후 3시 현재 7명의 매몰자 중 3명은 사망했고, 구조물에 깔린 상태로 발견된 2명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2명은 아직 매몰 지점조차 확인되지 않은 실종 상태다.
김정식 울산 남부소방서 예방안전과장은 "굉장히 협소한 공간에서 대원들이 일일이 장애물들을 절단하고 손으로 헤쳐가며 수색하고 있어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라면서 "현재로선 언제 마무리될지 예측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 과장은 "크레인 등 중장비를 동원하면 자칫 2차 사고가 발생해 매몰자는 물론 구조대원까지 위험할 수 있어 인력을 활용한 구조·수색에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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