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조국수호 위해 헌신, 해군 초계기 순직자들(종합2보)
세살배기 아들 두고 떠난 아빠·신혼 가장 등 안타까운 사연…분향소 눈물바다
산화한 네 젊은 청년들, 영정 속 밝게 웃는 모습으로 조문객 맞이
(포항=연합뉴스) 김선형 황수빈 기자 = "아빠, 아빠…아빠 보고시퍼(보고 싶어)."
30일 오후 해군 초계기 P-3CK 917호기 추락사고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경북 포항시 해군 항공사령부 체육관(금익관).
세 살배기 남자아이가 들어서자 장내는 온통 눈물바다로 변했다.
고 박진우(34) 중령의 하나뿐인 27개월 된 아들이다.
아이는 영정 속 고인의 얼굴과 똑 닮아 있었다.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체육관에 들어섰던 박 중령의 장모는 사위의 영정을 마주하자마자 목 놓아 통곡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박 중령의 모친과 누이도 함께 오열했다.
아빠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손에는 장난감 자동차를 꼭 쥐고 있던 아이는 외할머니 품에 안겨 말없이 눈물방울만 떨궜다.
아들의 눈물을 보고 엄마는 "엄마가 울지 않을게"라며 연신 웃어 보였다.
아이의 고모는 애써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흰죽에 조미김을 아이에게 내밀었다.
하늘나라로 떠난 아빠를 보기 위해 바다 건너 제주에서 건너온 아이였다.
동갑내기였던 부부는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고 한다.
체육관 단상 위에는 고인이 된 네 청년의 영정이 일렬로 나란히 놓여있었다.
1991년생부터 2000년생까지 20∼30대였던 고인들은 사진 속에서 밝게 웃고 있었다.
고 박 중령의 처남은 매형을 다정하고 바른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는 "매사에 자신보다 남을 챙기는 분이셨고 항상 솔선수범했다"고 말했다.
경남 진해가 고향인 박 중령은 뼛속까지 참군인이었다고 한다.
그의 장인은 "사위는 성격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군인"이라며 "평소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자주 밝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장인은 해군 원사로 25년간 잠수함을 타다가 2013년 만기 전역했다.
같은 군인 출신이다 보니 대화가 더 잘 통했고 남달리 사위를 더 사랑했다고 한다.
그의 장인은 "그동안 한 번도 사고가 없어서 이런 사고가 날 거라고 걱정을 못 했다"라며 "항공 사령관이 되는 게 꿈이었던 사위였다"고 기억했다.
고 박 중령의 동기들은 흐르는 눈물을 말없이 닦아내며 고인에게 경례했다.
이들은 생전 고인에 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훌륭한 친구였다. 한없이 착했다"고 말했다.
초계기 조종사였던 박 중령은 비행시간 1천700여 시간을 보유한 베테랑이었다.
그와 함께 조종간을 잡은 부조종사 고 이태훈(30) 소령 역시 900시간의 비행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고 박 중령 분향소의 맞은편에는 그와 한 팀이었던 윤동규(27) 상사의 유족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유족에 따르면 고 윤 상사는 유년기부터 조국 수호를 위해 군인이 되는 게 장래 희망이었다고 한다.
윤 상사는 항공기 엔진과 조종석 계기 등을 모니터링하는 조종사 보좌 역할을 했다.
부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18년 군에 입대한 그는 지난 2023년 포항에서 제주도로 발령받았다.
그는 아내와 제주에서 단란한 신혼 생활을 즐기면서도 휴가 때마다 꼬박꼬박 부모님을 보러 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최근 친형의 결혼식에서 가족들과 만난 것을 마지막으로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됐다.
이들과 함께 비행했던 고 강신원(25) 상사는 항공기 내·외부 점검 등 비행을 위한 전반적인 안전임무를 도맡았다.
고인들에 대한 영결식은 다음 달 1일 항공사령부 강당에서 해군참모총장 주관으로 거행된다.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봉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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